Common Methodological Confusions in Diabetes Care ( Language: Korean) Part 3

7. 비관적인 예측 (2)

 

반면, 위의 당뇨Establishment에 속하지 않은 부분도 그다지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당뇨Establishment에 속하지 않은 부분을 便宜상, 在野당뇨계라고 불러보자.  필자의 意見으로는 재야당뇨계에도 아직은 큰 희망을 걸 수가 없는 것 같다.

사실, 당뇨에 도움이 되는 植物은 알려진 것만 2, 500개, 아마,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수 만가지 가 될 것이다. 따라서, 민간 처방이나 동양의학의 처방으로 당뇨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常識일 뿐 아니라, 엄연한 事實이다.  당연히, 어느 식물에서 추출한 것이 당뇨에 좋다라는 기사와 소문과 민간신앙은 지금까지 부지기수로 나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부지기수로 출현하는 `당뇨에 좋은’ 植物들에 관한 주장들은 당뇨 Establishment쪽에서 `그런 것들은 효과 없어요’라고 소리만 한 번 지르면, 자취도 없이 쑥 들어가고 만다. 처음부터 自信이 없는 주장을 한 當然한 결과일 수도 있고, 싸워보았자 勝算이 없을 것이라는 자포자기의 태도일 수도 있다. 거기다가, 藥師法과 식약청 보건소 같은 단어를 들먹이면서 겁을 주면, 재야(在野)당뇨계에서 출현한 제품은 꼬리를 내리고 쑥 들어가기 마련이다. 계속해서 눈부분을 검은 선으로 가린 사진들을  광고에 출현 시켜가면서, `간증’ `경험담’위주로 몇 번 광고를 하다가, 그나마 슬그머니 사그러가는 `관행’이 계속 반복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아주 비양심적인 경우가 많다고 본다. 개발자 자신도 자신의 제품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어떠한 부작용이 있는지, 重金屬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이런 것에는 관심도 없고, 관심이 있다한들 어찌 해볼 방도가 없을 것이다.  필자가 그 동안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과 일본 대만의 경우, 당뇨에 좋다면서 출현한 제품들의 시장에서 존속하는 평균수명은 6개월이 채 안된다. 여러 해 걸려서 축적해야되는 임상 통계 같은 것은 재야당뇨계에서는 꿈을 꿀 수도 없다. 하여간, `당뇨에 좋은’ 식물이라는 것의 종류가 수 천 가지에 이르고, 이를 이용하는 재야당뇨계 자체가 계속해서 자체 진화하기 때문에, 그리고, 화학제제가 워낙 부작용이 심하기 때문에, Underground Market을 어느 나라에서건 완전하게 없앨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식물들로부터 기가 막힌 제품이 출현한다 한 들, 아래의 이유로 인하여 그것이 당뇨 Establishment에 의해 받아들여지거나, 시장에서의 어느 정도의 규모를 달성할 가능성은 아주 작아진다.  당뇨Establishment에서도 엄청난 구조적 문제가 있듯이, 재야당뇨계에서도 정말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일단 재야 당뇨계의 구조적 문제를 잠깐 살펴보자.

7-1. 자연 물질을 사용하였을 경우에는 특허 취득에 제한이 있다. 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연구 건 생산이건 마켓팅이건 대량투자를 할 수가 없다. 대규모 투자를 하지 않은 연구와 마켓팅은 天運이 따르지 않으면 그 품질이 나쁠 수밖에 없다. 현재, 필자가 보기에는 그런 식으로 천운이 따라준 연구나 제품은 없는 듯 하다. 현재, 일본은 전세계에 식물관련 특허출원의 약 반(半)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별로 실질적인 결과를 못 거둘 것으로 믿어진다. 필자가 과문(寡聞)하여서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식물관련 특허를 내어서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택솔’의 경우 이외에는 들어본 적이 없다. 특허로는 공개(公開)하지 않은 추출기술이나 보관기술이 있다고 주장을 하여 경쟁상품과 마켓팅 상의 차별화를 시도할 뿐이다. 아니면, 진정한 구성성분이 특허로 공개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7-2. 어렵게 여러 가지 기교(技巧)를 써서, 특허를 취득하였다하더라도, 누군가 지적 재산권을 침범했다고 해서, 그 것을 침범했는지 하지 않았는지 잡아낼 수가 없다. R&D에 대규모의 투자를 했다가는 유사제품에 좋은 일만 시켜줄 뿐이고, Active Ingredient(유효성분)의 궁극적인 Identification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불법으로 모방을 했다하더라도 불법 모방했다고 광고하지 않는 한, 적발과 처벌이 불가능하다.  아니, 오히려 실제로 모방하지도 않았지만 모방했다고 하는 거짓상품들 때문에 더욱 골치를 앓을 것이다.

7-3. 또, 천연물질을 사용했을 경우, Active Ingredient를 찾아내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화학분석의 피크가 Active Ingredient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천연물질을 2-3개 사용하여 가열 합성하는 경우 Active Ingredient를 찾아내는 것은 거의가 아니라 확실히 불가능하다. 라면을 조리할 적에 90도에서 조리한 라면과 100에서 조리한 라면의 맛이 다른 이유처럼, 무한히 많은 화학물질의 무한히 많은 조합이 신체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 중의 어느 성분이 유효한 것인지를 완벽하게 찾아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무한히 많은 종류의 화학합성이 동시에 종합적인 작용을 하여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궁극적인 Modes of Action이나 Pathway도 발견해 낼 수가 없다. 단지, 약의 효과를 중간에서 검증하는 정도에서 Modes of Action을 찾아낼 뿐이다. 당연히, FDA의 의약품허가를 받는 것은 물 건너간 것이고, 당연히, 직접 표현을 사용한 광고는 물 건너간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회사 제품의 경우 식품으로 판매허가를 받았지만, 광고에 Diabetes (당뇨)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한다, 단지 Blood Glucose Control(혈당조절) 이란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7-4. 가령 만의 하나 Active Ingredient를 찾아낸다 하더라도, 제품의 Standardization(균일화)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같은 쌀이라 하더라도, 올해 수확한 쌀과 작년에 수확한 쌀의 화학성분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 아니다. 올해 한 지방에서 수확한 같은 품종의 쌀도 순이 네 집에서 심어서 수확한 쌀과 철수네 집에서 심어서 수확한 쌀은 화학성분이 완전히 일치할 수가 없다. 토질 강우량 일조(日照)량 등이 달라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느 해 어느 지방의 포도’ 식으로 `조합에서 모든 조합원 농가의 산출을 모두 거두어 들여서 섞어서 어느 정도의 균질성(均質性)을 확보하는’ Batch Approach나 Vintage Approach를 하는 이외에는 완벽한 수경(水耕)재배를 하여야하는데, 그것도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서 현실성이 없다. Standardization에 관한 한 뾰죽한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또, 생약제품에 얼마만큼의 Standardization이 필요한가의 문제도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한다.  일부 Standardization을 주장하는 천연생약성분의 상품이 있으나, 별로 신빙성이 없는 주장일 뿐이다. 단지, Standardization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를 알아 낼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주장해도 발각이 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천연생약제품은 대규모 임상실험을 해서 어떤 결론이 난다 한들, 그 다음 해 만든 제품이 그 전 해의 제품의 결과가 그대로 반복 적용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대규모 임상실험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렇다고 매년 수 억불을 들여가며 매년 임상실험을 반복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연물질을 재료로 사용하는 한 임상실험과 Standardization과정을 완벽하게 달성한 제품을 상업화 할 수 없다.  매 제품마다 Variation이 아주 심할 수밖에 없다. 원천적으로 그렇다. 따라서, 어떠한 통계의 결론도 매년 똑같은 뱃치로 매년 반복하지 않을 경우 어떠한 통계적 결론도 Extrapolate할 수 없다. 가령, 예를 들어, 효과가 1년 이상 2년에 걸쳐서 나는 제품이라면, 1년에 한번 수확을 하는 약초를 가지고는 정의상 당연히 통계적 결론은 불가능해진다.  자연제품은 보관 년 수에 따라 제품의 성질이 변한다. 당연히 Standardization 은 불가능하다. 당연히 확실한 임상실험이 불가능하다.  극단적으로 매번 다른 약을 써서 실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매년 제품이 다르다는 점을 넘어서서 월 별 제품의 성분의 내용이 다를 가능성도 있다.

7-5. 따라서, 대기업은 소비자가 그 제품과 관련하여 재판을 걸어올 경우 그에 대한 방어가 아주 난감해진다. 사실, 재판을 걸어도 소비자에게 거증(擧證)책임(責任)이 있고, 소비자 자신도 재판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주 어렵게 되어있기 때문에 재판을 안 걸게 될 것이라는 방어벽이 하나 있을 뿐이다. 자연제품이라는 것이 원천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세계의 어느 한 지역에서 판사가 소비자의 손을 들어 줄 가능성은 언제든지 존재한다.   그 해당 대기업은 법정에서 능지처참을 당할 것이다.  대기업은 이런 사건에 대하여 보험으로써 처리를 할 수가 없다. 보험회사로서도 그 위험을 측정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Active Ingredient를 모르고, Standardization도 되어있지 않고, Modes of Actions를 모르고 있는 상황하에서 대기업은 이런 재판에서 아주 불리하게 되는 것이다. 꼭 무슨 부작용이 있어서 재판이 걸리는 것보다는 누구던지 효과가 없다고 재판을 걸면, 효과가 있다고 광고나 주장을 한 사람이 어느 정도는 증명을 해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증명의 결정적인 도구인 Active Ingredient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통계는 상관관계를 나타낼 뿐이지,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대기업이 가지고 있는 통계라는 것이 앞에서 필자가 말했지만, 거의 모두 빵 점  짜리 통계이다. 일단 법정에 나가면 떡이 나게 되어있는 자료들인 것이다.

7-6. 사실, 중국정부가 동양의학의 처방하나를 지목하여 그 과학성을 갖추기 위해 개입하거나, 인도정부가 아율베다의 한 처방을 지목하여 그 과학성을 갖추기 위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개입할 가능성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즉, 어느 어느 제품은 중국정부가 공식적으로 대규모임상실험을 하여서 안전성과 효과를 보증한다 이런 식으로 광고를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 필자의 의견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본다. 만약에 중국정부에서 어느 제품을 수 천명에게 테스트하여서 그에 대한 자료를 제시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Standardization, Identification, Patentability의 문제가 남아있다.  또, 당뇨의 경우라면, 중국은 이미 그 효과가 잘 알려진 육미(六味)지황탕(地黃湯)이나 유소산 등의 효과를 넘어서면서 이 만큼의 신규(新規)투자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제품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미 상당히 알려진 육미지황탕이 상당히 효과가 있고, 나머지는 이래 저래 특허가 나올 수 없고, 나온다 하더라도 지적재산권의 보호가 안되기 때문에, 수 천만 불을 들여서 대규모 임상을 실행할 경제적 이유를 찾아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인도의 아율베다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새로운 특허를 취득하면서 수천 만 불을 들여가며 아율베다의 어느 처방을 과학화하더라도, 아마, 이미 잘 알려진 아율베다의 처방인 Pterocarpus Marsupium의 효과를 능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0억이상의 인구를 가진 중국과 인도가  전통처방을 과학화하여 시장에서 유통시킬 상품화하는 것이 정부가 개입하더라도 어렵다면, 일반 기업이나  다른 나라나 다른 상품의 경우는 말 할 것도 없다.  필자의 생각을 간단하게 다시 정리해보면, 육미지황탕과 Pterocarpus Marsupium과 같이 이미 오래 동안 알려져서, 지적 재산권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강력하고 우수한 처방이 있기 때문에, 중국과 인도에서는 효과와 안전성에서 그 것들을 능가하면서도 수 천 만 불을 새로 투자할 만한 새로운 처방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고, 따라서, 중국정부와 인도정부는 그런 식으로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관련하여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인데, 양약(洋藥)이건 동양의학의 약이건 간에, Placebo가 아니라, 육미지황탕과 Pterocarpus Marsupium을 컨트롤 그룹으로 놓고 통계처리를 하는 것이 아주 좋은 관행이 될 것이다. 육미지황탕과 Pterocarpus Marsupium보다도 좋지 않은 것은 아에 말도 꺼내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위에서 지적한 RCT의 여러 가지 문제점도 피할 수 있고해서 아주 좋은 통계적 방법론이 될 것이다.

당연히, 중국과 인도의 전통처방은 어느 고을 어느 집안의 3 백 년 된 秘方,..의 형태로 남아있을 것이다. 한국과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소위 秘方을 수집하는 것을 아마추어 차원의 취미로 하고 있는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이러한 비방들 가운데에는 상당히 임상적 가치가 괄목한 비방들이 散在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일정규모이상의 상품화가 되어서 시장에서 일반 消費者가 이를 시장에서 접할 수 있을 확률은 거의 제로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가지 애석하기 짝이 없는 것은 소위 이런 비방들이 傳受자들이 거의 멸절(滅絶)되고 있어서 실제로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또, 전수자들 가운데는 그러한 비방의 근본 정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그러한 비방들은 사실 지식의 축적과 전달을 위해 지식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나올 수 있는 결과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없어져가는 비방들 가운데는 없어져서는 안 될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단지, 무엇이 없어져서는 안되고, 무엇은 없어져도 되는가를 영원히 알 수가 없도록 현대의 시장구조와 의약계의 먹이사슬이 짜여있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7-7. 대기업이 자연물질로 만든 생약제품으로 당뇨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애매한 약효를 표방하면서 코카콜라처럼 마켓팅에서 승부를 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규모 조직적인 마켓팅은 자신들이 파놓은 FDA와 같은 규정이라는 덫에 걸려서 완전히 불가능하다. 당뇨라는 말을 표시할 수도 없고, 혈당이라는 말도 표시할 수 없고, 사용법도 자세하게 표시하면 약이니 그렇게 할 수 없고, 포장도 약이라고 오해할 수 있는 포장을 해서는 안되고,…  마켓팅으로 승부를 걸 수 없게 되어있다.  自繩自縛이라는 표현이 이렇게 딱 들어맞는 경우가 없다. 이렇게 마켓팅으로 승부를 걸어볼 수 있는 곳은 현재 미국이 유일한 경우이고, 필자가 경영하고 있는 회사도 미국시장을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움직이고 있다.

8. 비관적인 예측 (3)

8-1.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당뇨에 확실한 효과가 있기 위해서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자연 식물을 원료로 한 제품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하루에 20 그람에서 100그람의 원료를 구강을 통하여 딜리버리 (`몸 속에 전달’이라고 번역해보자) 해야 된다. 여기에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현실 상의  문제가 따른다.  20 그람이라고 하면 보통 커다란 국수저로 3숫갈정도의 양에 해당하고, 100 그람이라고 하면, 15 숫갈에 해당한다. 이 것은 상당히 많은 양이다. 그리고, 아래에서 조금 더 설명하지만, 압축이나 액체 추출에서도 문제가 상당히 있다.

8-2. 추출 포장 안전성 검사를 마치려면, 적어도 수년의 준비기간에 수 백 만 불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8-3. 그리고, 동물실험 임상실험까지 포함되면, 쉽게 수 천 만 불이 들어간다.

8-4. 모든 디스트리뷰터의 마진이 상당히 높다. 따라서, 소비자까지는 심한 경우 10 배정도의 Mark Up을 생각해야된다. 따라서, 최종소비자가격이 월 200불에서 300불이 되지 않고는 수익성을 맞추기가 기술적으로 절대로 불가능하다. 월 200불 정도의 제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하여 볼 적에 시장에서 받을 저항을 한 번 겪어보기 전에는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 의료보험을 통하여 반강제적으로 지불이 되지 않는 한 개인의 호주머니에서 지불되는 액수는 거의 월 200불에서 300 불 사이가 그 상한이라고 보면 된다.  심지어는 먹지 않으면 죽는다고 알려진 AIDS제품도 월200불 정도에서는 시장의 저항을 받는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월 200불 정도에서 인간이 자기의 목숨의 가격을 책정하고 있다고도 주장해볼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을 경우에 인간이 선택을 하고, 그 경우에 형성된 가격이 정당하고 합법적인 시장가격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진국에서도 월200불 정도가 인간이 자신의 생명에 책정하는 최대한도의 정당하고 합법적인 시장가격인 것 같다고도 생각이 든다. 미국이 그럴진데, 후진국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생약제품의 (안전하고 효과가 좋아도)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약점이고, 化學製劑의 가장 큰 장점이 (독성이 강하더라도) 가격이 아주 싸다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된다.

8-5 또, 위의 계산대로라면, 자연식물을 원료로 이를 켑슐의 형태로 제대로 압축하여 딜리버리할려면, 위의 계산에 의하면, 한 달 사용량에 원가만 200 불 정도가 된다. 그러나, 압축을 했을 경우 그 효과가 유지되는지, 새로운 독성이 발견되는지는 전혀 미지수이다.  왜냐하면 열을 가하는 과정에서 화학구조가 불안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천연물질을 사용하는 제품에는 이 문제는 피할 수가 없다. 또, 압축의 비용이 만만하지가 않다. 알콜을 쓰고 고온을 사용하지 않는 한, 소비자에게는 당연히 월 600불 700불의 비용을 받아야된다. 시장에서 강력한 抵抗을 받을 수밖에 없는 가격이다.  켑슐의 형태로 자연재료를 사용한 제품을 압축 또는 추출하여 딜리버리를 한다고 하는 거의 모든 상품은 사실, 압축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압축과 추출의 비용이 엄청나게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압축과 추출의 과정에 Ingredient의 性質이 바뀌기 때문이다. 대부분 수분만을 빼고 그대로 캡슐링을 한다. 심지어는 수분도 빼지 않고 그대로 켑슐링을 한다. 제 용량(用量)을 먹으려면, 당연히, 손가락만한 500 미리그램 켑슐을 하루에 최소 40개정도의 켑슐을 먹어야하는데, 그런 제품은 거의 없다. 당연히, 환자는 제 용량을 먹지 못하게 되어있다. 또, 추출할 경우에 알콜을 사용하거나 고온을 사용하기 때문에 추출과정에 독성이 발생할 가능성이 언제나 있다. 그래서, 안전성을 그 가장 큰 장점으로 하는 천연생약제품의 존립 목적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안전하지 않은 생약제품이라는 것은 짜지 않은 소금, 예쁘지 않은 미인, 싸움 잘 못하는 깡패…처럼, 존재가치가 의심되는 이상한 개념일 뿐이다. 자연 제품에 관한 한 켑슐에 들어가 있거나 테블렛으로 되어있는 제품은 많은 경우 효과가 별로 없는 것은 당연하다. 제대로 된 용량을 딜리버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단지, 양약(洋藥)의 흉내를 내어보기 위해 켑슐에 집어넣고 테블렛으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물론 좋은 성분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 정도로는 효과를 본격적으로 보기에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형편없이 모자란 용량(用量)들이다.

 

9. 비관적 경험과 낙관적 예측: 케이스 스터디

필자의 회사의 제품은 `엘리오틴’이라고 하는 당뇨병 환자용 천연(天然)생약제품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당뇨학자께서 계발을 하시고, 98년부터 2001년에 걸쳐서 지금까지 약 20,000 명 정도의 당뇨환자께서 사용하셨다. 동물실험과 독성시험, 그리고 임상실험을 거친 제품이다. 또, 몇 몇 세계의 유수한 제약회사들과 제휴관계를 가지고 있는 제품이기도 하고, 카나다와 미국, 그리고 호주의 전문 의학지 및 당뇨전문가들의 교과서에도 소개되었다.

다른 당뇨식품들과 비교해 볼 적에, 일단, 엘레오틴은 3 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꾸준하게 수익(收益)도 발생하였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시장에서 6개월 이상 살아남는 제품은 없는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는데, 우리 제품은 일단 살아 남았다. 그리고, 살아 남았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임상(臨床) 데이타가 축적(蓄積)이 되었고, 그 효과를 측정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효과의 예측(豫測) 모델까지 만들 수 있었다.  혈당을 컨트롤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단 혈당을 정상으로 돌려 놓고 나면 정상인 상태로 2-3년간 지속이 된다는 것도 밝혀졌다. 어느 정도 Modes of Actions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엘레오틴도 시장에서 지금까지 3 년 동안 살아남기까지, 비용도 비용대로 많이 들었지만,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초창기에는 첫 째로 의사 분들의 반발(反撥)이 대단했다.  “그렇게 좋은 제품이면 내가 모를 리가 없다”는 반응(反應)이 있었다. 필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순환(循環)논리적 발상(發想)도 찬성(贊成)할 수 없었지만, `나는 모든 진리를 알 고 있다. 내가 모르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식의 아집(我執)에 찬 권위의식에 대하여 필자가 상당히 분노(忿怒)를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가서야, 이 분들의 속 사정을 들어 볼 적에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인제는 필자가 그다지 화를 낼 일도 없어졌다. 그리고, 인제는 미국과 카나다는 물론, 엘레오틴을 모르는 당뇨전문의는 거의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환자들을 대상으로 서베이를 해보면, (정확하게 이해하고 계신 환자의 수는 아주 작았지만) 당뇨교실에 정기적으로 참가하는 환자들과 인터넷을 사용하는 환자들은 거의 70%가 우리 제품을 부정확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알고는 있었다. 아마, 이런 분위기 하에서, 의사 분들은 `내가 모르니…’라는 비판을 하기가 어려워 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지금은 많은 의사 분들이 우리 제품을 환자들에게 권유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고, 우리 회사는 환자들에게 엘레오틴을 권유하신 의사 분들의 명단과 권하시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환자들이 엘레오틴을 사용하고 효과를 보았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의사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 다행히, 요사이는 초창기와 같은 의사 분들의 반대를 그다지 경험하지 않고 있다. 의사 분들의 분위기를 바꾸는데는 역시 3 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고 개인적으로 결론을 지었다.

또, 재미있는 반응은 `그렇게 좋은 제품이라면 노벨상을 받았을 것이고, 노벨상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제품’이라는 어거지 논리(?)도 초창기에는 많이 경험했다. 그러나, 김 대중 대통령께서 노벨상을 타신 이후에는 이런 반론(反論)도 많이 수그러졌다. 노벨 의학상은 획기적인 이론(理論)적 기틀을 마련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지, 현실적으로 효과가 있는 상품(商品)에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추측한다. 우스개소리이긴 하지만, 김 대중 대통령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일단 `훌륭하면 노벨상을 탈 것이고, 노벨상을 타지 못하면 훌륭하지 않다’는 논리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하여간, 노벨상을 타지 않았기 때문에 엘레오틴은 엉터리일 것이라는 주장은 요사이는 들어보지 못한다.

둘째로, 환자들의 회의적(懷疑的)인 반응도 처음에는 넘어서기가 어려웠다. 약을 먹는다거나, 건강식품을 먹는다는 것은, 누구나 단 하나 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자신의 몸을 맡긴다는 의미가 있어서, 사실은 엄청난 신뢰(信賴)관계가 형성(形成)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나가 다 열광적(熱狂的)으로 추천하여 주는 그런 제품이더라도 사람은 자기 몸을 맡기는 것을 망설이게 마련인데, 엘레오틴의 경우, 판매초기에 의사들의 상당수가 심하게 반대하는 상황하에서 사용자들이 자기 몸을 대상으로 믿음 하나만을 가지고 어려운 도박을 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도 십 분 이해가 된다.  처음에는 정말로 다급한 분들, 절박한 분들을 대상으로 판매가 이루어졌다고 필자는 추측한다.  그리고, 요사이는 제품이 어느 정도 알려진 뒤라, 어느 정도 정상적인 판매가 이루어 지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사용자들의 많은 불평 중의 하나인데, 엘레오틴의 효과가 너무 서서히 나타난 다는 것이다. 즉, 1 개 월내에 효과가 나타나는 경우는 거의 20%정도고 4 개월 정도가 되어야 본격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실제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지루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기다림의 시간이라는 점이다. 4 개월을 지속하지 못하고 중간에 사용을 중지하신 분들의 경우가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우리 제품 같은 경우, 효과를 약간 더 빨리 나오게 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제품은 장기적이고도 원천적인 개선(改善)을 목표로 하는 제품이어서 단기적인 효과를 우해 다른성분을 첨가하는 것에 원칙적으로 동의할 수가 없었다. 단기적인 효과를 위해서라면, 사실, 우리 제품보다는 화학 제제인 양약(洋藥)의 경우가 훨씬 더 효과적이고, 단기(短期)의 사용이라면, 화학 제제인 양약의 경우도 그다지 부작용도 그리 걱정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 문제에 관해서는 필자로서는 아직 명확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단기 혈당(血糖)강하(降下) 기능을 첨가할 것인가, 아니면, 단기 혈당강하는 훨씬 더 좋은 다른 약에 맡길 것 인가하는 문제는 윤리적인 문제도 있고, 시장점유율의 문제도 있고 해서 여간 고민되는 일이 아니다.

그리고, 효과가 늦게 발생하는 것과 관련하여, 또 하나 아주 어려웠던 일은  초창기에 엘레오틴을 판매하시던 분들이 거의 모두가  영세한 사업규모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었다는 분들이다. 한국만 하더라도, 20 명 정도의 업자 분들이 언론의 보도를 접하거나, 소문에 소문을 듣고, 엘레오틴의 영업을 시도하셨으나, 3년이 지난 오늘 계속적으로 영업을 지속하시는 분은 2-3분 정도이다. 대부분의 경우 단기간내의 폭발적인 판매의 성장을 기대하시고 영업을 시작하셨는데, 제품의 효과가 4-5달 걸려서 나오기 시작할 경우, 한 환자의 성공이 소문으로써 다음 환자로 연결되는 연쇄효과도 마찬가지로 늦어지게 되고, 거기에 맞추어서 광고효과도 폭발적으로 나지 않아서, 적어도 1-2 년 정도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상당한 초기 투자를 해야하는 것이 당연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투자를 할 수 없는 영세업자들은 생존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영세업자들의 대부분이 사용자 기록을 남기지 않은 점, 판매 후의 철저한 관리를 하지 못한 점이, 안타까운 점이 아닐 수 없었다. 또, 경우에 따라 약효를 과장한 걱정스러운 경우도 없지 않다고 본사로 보고가 되었다. `먹기만 먹으면 순식간에 당뇨가 낫는다`라고 잘 못 알고 엘레오틴을 사용한 사람도 많았다고 들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거기에다가, 소비자와의 관계에서 또 하나의 어려웠던 점은, 엘레오틴은 고가(高價)의 제품인 점이다. 비록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제품의 생산과정과 제품의 성격 자체가 최종 소비자 가격을 고가(高價)로 만들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지만, 생산자의 입장에서 볼 적에, 역시 엘레오틴은 고가의 제품이라는 점이 소비자들에게 대하여 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점은 필자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도 그 사정이 별로 나아 질 것 같지가 않다는 것도 사실 필자를 우울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초창기의 여러 시행착오와 여러 복잡한 사정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엘레오틴은 광고(廣告)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소비자의 입에서 입으로, 의사들 간의 의견교환으로 전달(傳達)되는 소문(所聞)만으로 판매를 하겠다는 원칙을 세웠고, 중간(中間)상을 내세우지 않고,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를 하여  과장광고(誇張廣告)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판매 후 관리를 철저히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장기(長期)경영의 원칙 때문에, 처음에는 많은 소비자에게 정보를 광범위하게 전달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러나, 인제는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좀 유별나지만, 엘레오틴은 그런 식으로 판매되는 상품이구나`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게 되었다. 새로운 판매방식을 사용하였을 적에 겪는 어려움도 당연한 어려움이었다고 필자는 개인적으로 터득하게 되었다.

세 번째로, 원료의 구입과 생산과정이 무척 어려웠던 점이 새삼 기억에 새롭다. 베트남에서 원료구입과정에서, 한 약초(藥草)에도 영어 이름, 중국어 북경어 이름, 약초(藥草)업자들이 쓰는 광동어 이름, 베트남어 이름, 인말레이 인도네시아어 이름이 사전에 나와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나와있고, 막상 산지(産地)에서는 전혀 다른 이름이 사용되고 있는 점등이 무척 어려움을 가져다 주었다. 원료 확보에 약 2 년 정도의 기간(期間)이 걸렸는데, 그렇게 어렵게 확보한 원료 중에 한 약초가 중금속으로 오염된 땅에서 채취(採取)된 것으로 밝혀져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경험이 있다. 이미 우리회사는 이런 경험에서 상당한 노우하우를 쌓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원료 확보가 상당히 수월할 것이라고 희망한다. 또, 제조과정에서 약초의 원래의 성질을 보전(保全)하면서 가공하기 위해 고온(高溫)을 사용할 수가 없었고, 섬유질(纖維質)을 보전하기 위해 분말(粉末)화 과정에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리고, 각 국의 판매허가를 취득하는 일도 아주 어려운 점이 많았으나, 지금은 여러 나라의 판매허가를 이미 받아놓아서 그것도 수월하여 졌다.

네 번째로,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생약제품을 가지고 당뇨치료제 시장에 진입할 경우, 여러 가지 저항을 받기 때문에, 새로운 제품이 진입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그런 어려운 점들을 이미 극복하고 안정된 Niche를 이미 확보하고 있는 우리 제품 이외에는 다른 제품이 등장할 가능성이 아주 작다고 보기 때문에, 현재, 누리고 있는 우리 제품의 독점적인 위치가 상당히 지속(持續)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즉, 대기업이건 소기업이건, 새로운 생약 제품에 대한 당뇨 기득권의 무조건적인 저항, 특허출원의 어려움, 가격구조의 어려움 등을 극복해야 하는 점, 또, 약효로서는 육미지황탕과 Pterocarpus Marsupium을 초월하는 제품을 수천 만 불을 투자하더라도 만들어 내기가 어려운 점등을 생각해보면, 그러한 모든 리스크를 부담해가면서  새로운 생약제품을 계발해 낼 상업적인 이유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III. 결론

 

위에서는 성인형 당뇨병을 중심으로 병의 정의와 관련된 개념상의 혼란, 연구방법론상의 함정, 치료제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살펴보았고, 우리 회사의 경험도 간단하게 서술해 보았다.

 

우선, 당뇨의 개념자체가 기능적으로 더욱 분화되어야겠고, 통계연구방법도 개선이 되어야겠다.  생약제품의 연구개발에의 투자환경이 지금보다는 개선되어야하고, 생약제품에 관해서는 무조건 먹이다툼의 차원에서 네가 먹히던가 내가 먹히던가 차원에서 배격과 비난의 입장을 취할 것이 아니라, 보완적인 입장에서 생약제품을 임상적 용도를 판단하는 별도의 기준을 마련하여야겠고, 무조건 인신공격성의 비난이 아니라, 증거와 과학성과 환자들에게 줄 수 있는 실질적인 도움을 놓고, 당사자들간의 건강한 토론의 관행이 정착되어야겠다.

 

참고문헌

 

1)  James Burke, The Day Universe Changed, (Little, Brown and Company1995),

 

2) James Burke, Connections, (Little Brown and Company 1995),

 

3) Richard Gordon, The Alarming History of Medicine, (St. Martin Griffin 1993),

 

4) Porter (ed.),CambridgeIllustrated History Medicin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5)  Gerry Tan and Roger Nelson, Concise Review for Primary Care Physicians, Mayo Clinic 1996 gives an excellent review of the subject.

 

6)  James Gleick, Chaos: Making a new science,  (Penquin1988),

 

7)  Mitchell Waldrop, Complexity, (Simon & Schuster 1992)

 

8)  Koutsoyiannis, Theory of Econometrics, (MacMillan Press, 1977)

 

9)  T. Kaptchuk. “Powerful Placebo: The Dark side of the Randomized Controlled Trial,” Lancet 1998; 1722-1725. Also, his famous book, “The Web That Has No Weaver”, professor Contemporary Books, LincolnwoodIllinois, 2000, contains a list of the works of such concerned scholars. pp.380-384

 

10)  R.J. Marles and N.R Farnsworth, Antidiabetic Plants and Their active constituents, Phytomedicine Vol.2, pp 137-189, 1995 gives a list of more than thousand herbs.

Common Methodological Confusions in Diabetes Care ( Language: Korean) Part 2

5. 실제(實際)의 예와 가능한 개선책:

 

필자의 솔직한 생각으로는 이러한 현실이 쉽게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서너 가지가 있다.

 

첫째로는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의 습관성이라는 것이 엄청난 慣性에너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뇨에는 약이 없다”, “당뇨는 절대로 치료되지 않는다”라는 표현(表現)이 얼마나 넓게 퍼져있는가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즉,`아직, 과학이 발달하지 않아, 약이 없는 것이고, 아직 과학이 발달하지 않아 치료가 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수 십 억 명이 하고 있는 것이다.  수십 억 명이 당뇨의 원인은 과학이 발달하면 발견할 수 있고, 당뇨의 치료도 과학이 발달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지, 병의 정의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식으로 정의(定義)하는 한,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여도, 원인을 발견할 수도 없고, 아무리 연구를 진행한들 해결책은 있을 수가 없다고는 아무도 생각치 않고 있는 것이고, 그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아주 어렵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두 번째의 이유는 기득권(旣得權)의 먹이 사슬 문제 때문에 위와 같은 개념상의 혼돈으로 발생하는 여러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기가 쉽지 않다. 소위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기득권의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아니, 어느 면에서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심각하다.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과학’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실제로는 `과학자들이 서로 인정하는 것’으로 정의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끼리’사이의 `끼리끼리’가 `과학’으로 둔갑(遁甲)되어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전부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경우가 그렇다는 것이다.  학계에 어느 정도 생활을 해보면 알겠지만,  `연구비를 타낼 수 있고, 유명 전문지에 출판이 되는 것’으로 `과학’이 정의되어있다. `내부에 논리적 모순이 없고, 뒷받침하는 증거가 있는 것’을 과학으로 생각하였다가는 큰 오산이다.  물론, 훌륭한 논문이 출판되어 우리들의 사고방식을 바꾸어주기도 하고, 실제적으로 생활에 큰 도움을 주는 경우도 물론 많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논문도 간단한 형식만 갖추면, 소위 커낵션으로 출판이 된다. 학계에서 발행하는 논문들을 평균 몇 명의 사람이 읽는가를 보면, 1.5명으로 나와있다. 수 천 명 수 만 명이 읽는 논문이 상당수 있어서, 그 평균치를 움직여 놓았을 것을 생각해보면, 아무도 안 읽는 논문이 대부분이라는 소리이다. 우리가 차분히 한 번 생각해보자, 그렇게 많이 출판되어 나오는 의학논문가운데, 정말 몇 %가 우리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 논문인지…  현재, 의학계라는 곳의 서열(序列)은 잡지에 얼마나 많은 논문을 출판할 수 있는가하는 기준으로 짜여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쌓은 명성을 바탕으로 연구비를 더욱 타내는 것이 거의 종교처럼 되어있다.  연구비를 많이 타내는 교수 밑에는 연구진이 많이 몰리게 마련이고, 그러면, 그 인맥이 형성된다. 소위, 우리가 상아탑이라고 부르고 있는 학계도 인간이 살아가는 곳이 되어서, 이렇게 먹이사슬과 먹이사슬이 연결되어 엄청난 구조적 함정이 있는 경우가 많다.  내부의 논리적 일관성이 있고, 증거가 있고…이런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되어있다.

 

가령, 예를 들어서, “어느 간단한 요가 체조(體操)가 아니면 기공체조가 부작용도 전혀 없이 당뇨를 완치한다”는 것을 어느 과학자가 처음 발견을 했고, 통계적으로도 증명이 된다고 상상(想像)을 해보자. 그리고, 그 과학자가 그런 것을 논문으로 썼다고 상상을 해보자. 그러한 논문이 학계에 선풍(旋風)을 일으키고 의사들이 그런 것을 다투어서 환자들에게 소개할 가능성은 아주 작다.   그러한 논문은 죽었다가 깨어도, 소위 유명잡지에 출판이 될 수는 없다.  당연히 그 것을 발견한 사람은 과학자로서 경력을 쌓을 수 없다.  그 사람은 실없는 사람이 되고, 심지어는 부도덕(不道德)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소위 학계(學界)의 그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과학자들은 위와 유사한 발견을 하고도 발표(發表)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는 다른 사람들이 혹시 `당신이 발견했는가?’ 물어오면 자기(自己)가 발견한 사실 바로 그것을 부정(否定)하는 사태도 필자가 아는 경우만 해도 왕왕(往往)있다.  당뇨에는 그런 식으로 발표되지 않는 아주 훌륭한  치료법 개선법 등이 아주 많이 있다.

 

반면, “요사이 유럽의 어느 큰 제약회사에서 실험하고 있는 어느 화학성분을 쥐에다가 실험하였더니, 용량의 3배를 주면 50%가 간(肝)기능에 이상이 생겨서 죽고, 용량의 5배를 주면 60%가 신장기능이 정지하여 죽는다.  그러나, Control그룹에 속해 있는 쥐는 47%가 죽었다. 따라서, 계속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다” 식으로 자료를 들이대면, 어느 정도의 잡지에는 출판이 가능하다.  필자가 너무 실질적 경험적인 이득(利得)만을 추구하는 지 모르지만, 사람이 쥐가 아닐 진데, 필자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사람을 실질적으로 살리는 기공을 연구하는 앞의 연구가 쥐가 언제 죽는 가를 연구하는 뒤의 연구보다 값어치가 있을 것 같다. 이래저래 독성(毒性)이 있는 것을 알고 난 뒤, 즉, 이래 저래 사람에게는 쓰지 못할 것이 알려지고 난 뒤에, 쥐가 몇 마리 더 죽으면 어떻고 덜 죽으면 어떻다는 것인지 솔직히 필자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사업을 하고 있는 요사이 뿐 아니라, 필자가 학계에 종사할 적부터 그렇다.

 

따라서, 현재, 소위 학계에서 찾고 있는 방법은 무언가 당연히 부분적이고 분석이고 해부적인 접근을 계속 할 것이고, 통합적이고 실질적인 방법론은 출판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방법론이 학계에서 자리 잡을 가능성은 아주 작다. 따라서, 당뇨라는 병을 위에서처럼 정의하는 한, 현재의 학계의 분위기가 그런 식으로 진행되는 한 당뇨라는 병에 관해서는 영원히 답을 찾지 못할 것이다. 현실이 그렇다.

 

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거기다가, 의료계의 연구라는 것이 통계를 전공하는 사람이 보면 문제점있는 통계자료를 들이대는 경우가 태반(太半)이다. 소위 자유도라는 것이 거의 마이너스 무한대의 통계자료를 의미한다.  그런 통계자료를 가진 연구들도, 연구비를 더 타낼 수가 있고 유명 과학전문지에 출판이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이유는 기득권의 문제이다.

 

현재, 당뇨라는 병과 관련되어 직접 간접으로 지출되는 비용은 미국에서 년 1500억불정도로 추산된다. 어느 나라 건간에 당뇨에 관련하여 직접 간접으로 지출되고 있는 것은 그 나라의 상업용건물의 임대료의 총계와 거의 비슷한 우연의 일치가 있다. 이렇게 엄청난 돈이 오고가는 곳에는 당연히 기득권이 형성되어있다. 이 것보다 훨씬 작은 돈이 오고가는 곳에서도 기득권을 가진 사람과 그것에 도전을 하는 사람과의 투쟁은 아주 치열하게 되어있다. 당뇨에 관해서는 위의 년 1500억불과 관련하여, 엄청난 기득권과 먹이사슬이 형성되어있다. 이렇게 형성된 기득권의 이익과 충돌하면 그 기득권으로부터의 엄청난 저항을 받게 되어있다. 현재, 당뇨라는 병의 정의를 기능적 정의를 중심으로 재정의 해야된다고 누군가가 주장을 한다하더라도 그것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의 거의 전무(全無)하다. 왜냐하면 당뇨를 그렇게 지수를 중심으로 정의하고 있는 관행을 중심으로 형성된 먹이사슬이 너무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당뇨Establishment’라고 부르는 거대한 집단의 힘은 군수사업의 로비력의 수 백 배의 힘을 가지고 있는 Establishment라고 생각하면 상상이 갈 것이다. 그래도, 군수산업(軍需産業)은 그 로비와 기득권을 일반사람들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폐해(弊害)가 사실은 한정되어있다.  어느 정도를 넘으면 여론의 직격탄을 맞게 되어있는 것을 본인들이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뇨Establishment 는 그렇지가 않다. 최근에 와서야, 한국에서도 의료계 파업이니 의료대란이니 하는 난리를 겪으면서, `의사라는 직업도 일종의 집단이익에 의해 움직이는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사회 전체가 그 분들의 기본권을 생존권을 침해하면 노동자들이 움직이는 것과 전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저항을 하는 것을 국민들도 알게 되었다. 그 전에만 하더라도, “생명을 지켜주는 인술을 베푸는 고마우신 선생님들, 돈도 필요 없으시고 오직 환자를 고치겠다는 사명감만으로 움직이시는 선생님들”로 모두들 생각해왔던 것이다. 당뇨Establishment는 `인술을 베푸시는 고마운 선생님들 가운데에서 특별히 공부를 많이 하신 선생님들’이기 때문에 이들이 어떠한 먹이사슬과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불경(不敬)의 죄에 해당되기 때문이고, 먹이사슬을 깨부술 정도의 인식(認識)과 발상(發想)의 전환(轉換)과 정치적인 힘의 동원(動員)이 의사 분들 자신과 일반 환자들 사이에서 자연 발생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상하게 오랫동안 계속되는 오해에는 그 오해로부터 이익을 취하는 그룹이 있고 그 위치를 방어하는 메카니즘이 있게 마련이고, 피착취그룹의 무지와 정치의식의 미숙(未熟)이라는 특징이 있다.  당뇨병의 자체의 잘 못된 정의를 깨버리고 기능적으로 분화시켜서 다시 정의하여, 그를 중심으로 의료체계를 재건(再建)하자라는 의견이 가까운 장래에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아주 작다. 필자가 보기에는 아마, 달성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당뇨라는 병이 기능적으로 재정의 되면서 치료 가능성을 기준으로 분화되어 나갈 가능성은 과학적인 이유, 의학적인 이유(理由)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경제적인 이유로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오로지 가능하다면 몇 명의 용감한 의사 분들이 당당하게 전체 당뇨 Establishment를 대상(對象)으로 과감하게 도전하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 의사 분들의 연구가 실제로 더 높은 질을 나타내고, 이 의사 분들이 실제로 돈도 더 벌고, 이 의사 분들은 도덕적으로 더 존경할 만한 분들이 되는 수밖에 없다… 어려운 일이다. 의사 분들이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능력이 근본적으로 결핍되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현재, 한국, 일본, 대만은 의료보험체계와 의약분업관련법규가 그러한 논의가 의사 분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있다. 의사 분들이 어떠한 부도덕한 의도(意圖)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의료체계가 의사들이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하도록 몰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2001년 2월 검찰의 한 발표가 있었다. 약 1, 000 명 정도의 의사 분들이 제약회사들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는 것이 검찰에 의해 발각되었고, 그 중의 죄질이 나쁜 80 명 정도만을 입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발각되고 입건된 의사 분들은 한결같이 그렇게 리베이트를 받는 것이 `관행’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리베이트를 받는 것은, 누구나 다하고 있고, 예전부터 해왔고, 앞으로도 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이런 분위기(雰圍氣)하에서, `당뇨라는 것의 올바른 정의(定義)가 무엇일까?’와 같은 배부른 공상(空想?)을 할 여유가 의사 분들에는 현실(現實)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당뇨약도 리베이트를 받아야하고, 그런 관행이 발각되지 않아야 하고… 하여간 의료업계의 내용을 보면, 기가 찬다. 제약회사들은 약국에서 6개월 9개월 기한의 어음을 받는 것이 관행으로 되어있고, 의사들의 해외골프뒷바라지를 해야되는 것도 관행으로 되어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양심적인 아니 `관행을 따르지 않는’ 의사 분들도 많이 계신 것을 잘 알고 있다. 필자는 그런 관행을 따르지 않는 분이 많은가, 아니면 따르는 분이 많은가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공무원들이 그런 일을 하여서는 당장 감옥에 갈 일, 회사원들이 했다가는 당장 파면되고 감옥에 갈일, 즉, 형사상의 背任죄에 확실하게 해당하는 일들이 `仁術’을 베푸시는 분들 사이에서는 慣行이 되고 있다는 것이 약간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의사 분들이 제약회사로부터 받는 rebate가 관행이라고 말하고 있을 때에 필자가 느끼는 배신감은 사실 정치인들이 뇌물을 받은 것이 드러났을 적에 `대가성이 없는 순수 정치자금’이었다고 주장할 적에 느끼는 불쾌감에 결코 덜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환자의 챠트(진료기록부)를 환자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다른 병원에 가면 처음부터 모두 검사를 모두 다시 시작해야한다. 치료비는 비현실적으로 낮고, 검사비는 보험에 포함되지 않고 때문에 검사비에서 수익을 올려야하는 의사들끼리 서로 `관행적’으로 묵계가 있다고도 들었고, 또, 챠트 자체가 다른 사람에게는 도저히 보여줄 수 없을 정도로 不實하게 기재(記載)되어있다고도 들었고, 챠트가 공개되었다가는 많은 의사 분들이 고발고소를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더 좋은 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리베이트를 받은 제약회사의 약을 처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들었고, 계속해서 같은 처방을 해주면 계속해서 진료를 받지 않으니, 사실 계속해서 같은 처방을 하는 것을 알려줄 수가 없다고도 들었다. 모든 의사 분들이 전부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 그런 엄청난 행위들이 `극소수의 예외적인 변칙적 행위’가 아니라 의료계의 `관행’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고, 그런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상당히 우려된다는 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의사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호텔에 합숙훈련을 하여야하고, 합숙훈련의 목적은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험문제가 비밀리에 사전에 유출되는 것을 기다리기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학수능시험의 경우 그런 일을 하였다가는 아마 나라가 발칵 뒤집힐 것이다. 그러나, 소위 `인술’ 행한다는 극소수(?) 의사 분들 사이에서는 이런 일들이 `慣行’으로서 수 십 년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너무 의료계의 비리를 針小棒大하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혈연 또는 학연을 통하여 개인적으로 親分이 없는 경우에 의사에게 진료를 받기가 겁난다는 느낌을 받은 사람은 과연 필자와 같은 극소수의 사람들뿐일까? 필자의 주위에는 유난히 의사 분들이 많다. 그 분들 모두가 착하고 지극히 양심적인 분들이다. 그리고, 의과대학에 가시는 분들도 모두들 심성이 착한 분들인 것을 필자는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착하고 착한 사람들을 집단범죄자로 만들어 놓는 법률/관행/오해…이런 것들을 깡그리 부수어 놓기 전에는 `당뇨병의 정의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심각하게 논의할 수 있는 여건(與件)이 형성되지 않게 되어있다.

 

미국이라고 事情은 별 반 다르지 않다. 미국의 일반의들은 일년 평균 약 $16,000정도의 리베이트를 각종 형태로 제약회사들로부터 받는 것으로 한 통계는 말하고 있다.  단지 미국에서는 환자들이 워낙 재판을 많이 걸기 때문에, 의사들이 훨씬 더 조심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이라는 가장 강력한 로비력을 갖춘 단체가 의료 관련 법을 완전하게 조정하고 있어서, 또, 의과대학의 정원을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에, 의사들의 과잉공급현상이 발생하는 것을 자체예방하고 있을 뿐이다.  하여간, 한국, 일본, 대만의 경우,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또, 이러한 慣行가운데에,  당뇨Establishment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의사 분들이 많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법규와 행정환경, 그리고 시장환경이 그런 분들이 나타나기에는 너무나 문제가 많은 것이다. 단지, 그런 현실이 약간은 서글픈 것이다.

 

6. 비관적인 예측 (1)

 

하여간, 당뇨병에 관한 한, 병의 정의 자체를 바꾸지 않는 한 계속해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뇌수술, 사람을 더욱 책임감 있게 만드는 유전자를 찾는 것과 같은 愚를 계속 범할 것이다. 단지, 출판이 되고, 연구비를 탈수 있다는 웃기지도 않는 과학성(?)이 이를 보호할 것이고,  먹이사슬의 受益者들이 든든하게 버텨주는 한 이러한 愚가 愚라고 지적되는 일도 별로 없이 당뇨산업의 파티는 계속될 것이다.  묘하게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가 힘들게 만들어 놓은 당뇨병의 정의, 그리고, 요상하게 만들어 놓은 법규, 그 속에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그 나름대로 괴로워하는 의사들, 그리고, 제약업계의 부조리와 먹이 사슬 속에 환자들만 멍이 들고 죽어나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미국과 유럽에서는 연구비가 수 십 억 불씩 투자된 독성강한 화학 제제가 출현할 것이고, 환자들은 거기에 큰 희망을 가졌다가 몇 년 있으면 부작용 때문에 사람이 몇 명 죽었는데 제약회사가 숨겼다고 보도가 되고, 제약회사들은 환자들과 법정 밖에서 돈을 주고 타협(out of court settlement)하고…하는 典型的인 사건들을 계속하여서 반복할 것이다. 제약회사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제품의 `판매허가를 FDA로부터 얻었다’라고 발표하면서 얻는 주식의 市勢差益이 연구개발비와 위에서 말한 Out-of-court settlement 비용, 그리고, 의사들에게 주어야하는 Rebate비용보다 많기만 하면, 아무리 독성이 강한 약도 개발과 판매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거기다가, 자기들보다도 더 좋을 가능성이 있는 약들은 미리 투자라는 명목으로 그 회사자체를 사버려서, 더 좋은 약들이 시장에 나오지 않도록 萬全을 企해둔다. 필자가 경영하는 회사에서는 엘레오틴이라는 생약성분의 당뇨식품을 계발하여 판매하고 있는데, 세계의 유수 제약회사의 사람들이 접근하여와서, 필자를 Buy Out(돈 많이 줄 터이니 회사를 팔고 나가라는 것)하겠다고 제안을 해왔다. 물론, 상당한 금액 ($2500 만 불) 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필자가 마음이 크게 動한 바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이 사람들은 원래 노는 물이 rebate로 해가 떠서  rebate로 해가 지는 사람들이 되어서 그런지, 그 담당 간부가 자기 개인에게 rebate를 50%를 주어야하는데, 스위스은행에 입금을 하여야된다고 요구를 하여와서 필자가 아주 불쾌해하면서 거절한 경험이 있다. 이런 일이 알려지면 필자가 살고있는 카나다에서는 감옥에 간다.  이 사람들이 생전에 그런 일이 없다가 우리 회사에 대하여서만 예외적으로 그렇게 하였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화를 내는 필자에게 이 사람들은 `관행이 다 그런 것’이라면서 오히려 필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이었다.  알려지면 감옥에 가는 일들이 `관행’인 사회… 정계나 건달들의 세계가 바로 그런 세계인데, 그런 세계에는 근처에 가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하나 뿐이 몸이 아플 경우 가지 않으면 안되는 장소들에도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이런 `관행’ 이런 부조리가 蔓延해 있다는 것에 인간적인 悲哀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일부 극소수의 행위를 필자가 침소봉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필자 자신을 달래보면서 말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약의 부작용으로 죽는 사람과 약의 부작용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사람이 전체 죽는 사람과 전체 입원환자 중의 4위이다. 약의 부작용으로 죽는 사람은 년 100,000명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무슨 약의 부작용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있는 확실하고 급성(急性)의 경우만을 이야기한다. 당뇨약처럼 오랫동안 복용하여 서서히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은 이런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필자가 생각해 보건데, 만성(慢性)의 약물부작용까지 합치면 그 숫자가 위에서 나타난 숫자의 수 십 배는 될 것이다.   누구든지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자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읽지는 않는다. 그러나 히포크라테스선서의 가장 중요한 항목이 “Don’t Harm the Patient”이다. 여기에 두 가지 선택이 있다. 독성이 있는 것이 분명히 확실한 화학제품이 있다. 또 하나는 독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천연생약제품이 있다. 상식적으로는 당연히 천연생약제품을 쓸 것이다. 아니,  백 번 양보한다 하더라도, 실제로 그런가 확인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왜냐하면,, 남은 대안은 엄청난 毒性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면 상당한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나중에 다른 기회에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유전자치료방법으로는 절대로 성인형 당뇨를 고칠 수 없다고 본다.  아마 당뇨뿐 아니라, 다른 모든 지수형 성인병들이 다 그럴 것으로 본다. 유전자치료방법의 효용은 몇몇 유전병을 조기 진단하여 약간의 개선을 하는 것에 그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지수형 성인병에 관해서는 유전자적 접근법으로서는 조기 진단조차도 어렵다고 본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이유로 인해, 유전자 쪽으로 아마 수 백 억 불을 던져 넣을 것으로 본다.  왜냐하면, `출판이 되고, 돈이 벌리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도, 결나올 결론은 빤하다: “계속 연구를 더 해야하니 연구비를 더 투입해야된다.”외에는 결론이 있을 수가 없다. 무한복잡계에서 지수를 중심으로 병을 정의했기 때문에 그렇다.  진정한 지식의 진보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학계 업계의 먹이사슬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하여간, 당뇨라는 병의 정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빨리 받아들이지 않으면,  수 십 억불 수 백 억불씩 연구비를 퍼부어도 헛발질이 될 수밖에 없고, 그런 헛발질이 계속되고 있는데는 무언가 사람을 씁쓸하게 만드는 무슨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Common Methodological Confusions in Diabetes Care ( Language: Korean) Part 1

成人형 질병치료제의 市場구조와 성인형 질병의 硏究 方法論에 관한 小考: 성인형 糖尿病 치료제 시장을 중심으로

 

I.서론:

 

이 글은 흔히들 成人病이라고 불리는 당뇨병, 고혈압 등의 질병에 관한, 學界의 연구와 치료제의 생산 및 유통과정에 편재(遍在)해있는, 개념상의 혼동과 구조적 모순에 관해서 쓴 글이다.  특정 질병에 대한 치료 방법을 선택하는데에 도움을 주고자 쓴 글이 아님을 분명히 하여둔다.

 

II. 본론:

 

1.   병의 정의에 관한 개념상의 혼동

 

질병(疾病)이라는 것은 `인류에 고통(苦痛)을 주는 신체의 이상(異狀)’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의학은 `질병의 치료와 예방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질병과 의학의 선후 관계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느 특정 질병이라고 부르는 ‘증후군’(症候群)이 먼저 존재하고 그를 치료하고 예방하는 의학이 진보하는 것이 보통의 순서이다.  그러나, 가끔 그 순서가 거꾸로 되는 경우가 있다. 즉,  기술의 발달에 따라 질병 자체의 정의가 바뀌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 질병의 정의라는 것은 영구히 固定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技術의 발달과 함께,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또 시대가 흐름에 따라 상당히 바뀌어 가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18-19세기 광학 (光學)의 발달과 현미경의 발견이후, 많은 질병들이 인간과 미생물과의 접촉, 즉, ‘전염’으로 발생한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그 병들은 ‘증세’ 위주가 아니라, ‘병인(病因)’ (이 경우에는 병균, 미생물, 기생충등)을 위주로 재정의 되었다.  학질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지금은 학질은 `말라리아 균 (obligate intracellular protoza of the genus plasmodium)에 감염된 학질모기가 전염시키는 병’으로 정의가 되지만, 예전에 학질로 진단 받았던 증세라는 것이 반드시 지금의 학질과는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학질로 진단되던 증세에는 말라리아균의 전염으로 시작하는 증세 이외에 상당히 다른 여러 증세를 포함하고 있었다.  지금도 우리의 언어 속에 그런 흔적이 남아있다. `학을 떼었다’ 라는 표현이 바로 그런 흔적 가운데 하나이다. 꼭 말라리아 균이 관계를 하지 않더라도, 고열이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그런 증세들을 흔히들 학질이라고 하였던 것인데, 그런 증세들은 요사이 와서는 이미 학질로 불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예전의 학질과 지금의 학질은 다른 정의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호열자(콜레라)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에는 많은 경우, (요사이 우리가 말하는 콜레라균에 의한 감염이 아닌) 전염성이 강하고 치사율이 높은 단순 집단 식중독 증후군도 `호열자’라고 진단이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誤診이 아니라, 그 당시에는 그런 증후군을 그런 병명으로 불렀고, 과학이 발달됨에 따라, 그런 증후군중 하나의 원인인, 콜레라균을 발견하게 되었고, 현미경의 발견, 그리고, 거기서 시작한 전염병학의 발전, 그에 따라, 새로이 발견된 원인을 중심으로 병이 재정의 되면서, 병의 개념과 정의가 시대별로 바뀐 것뿐이다.

 

또, 다른 예를 들자, 예전에는 열이 높은 것 자체를 하나의 별개의 병으로 취급하였다. 그 것이 바로 소위 熱病이다. 그러나, 고열을 발생케 하는 것은 수많은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는 열병이란 단어 자체를 잘 쓰지를 않는다.  의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열은 하나의 독립된 병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질병의 症候’라고 사고방식이 바뀐 것은 17세기가 되어서이다. (이에 관해서는 뒤의 참고 문헌에 기재되어있는 의학의 역사에 관련된 서적을 참고하면 재미있는 정보를 많이 발견할 수 있음으로 관심있는 독자는 필히 참고하기 바란다)  이처럼, 과학의 발달로 인해, 개념과 내용이 바뀌는 病名이 있고, 사용이 중지되어버리는 病名도 있다. 병의 정의와 병명의 변화만을 보아도 어느 특정시대의 의학기술의 발달 정도를 상당히 추측할 수 있다.

 

당뇨병(糖尿病)도 사실은 예전과 그 개념과 정의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오줌이 단’ 병을 의미했다.  `糖尿’라는 말 자체가 그렇고, Diabetes Mellitus 라는 말 자체가 그렇다.  또는 오줌에 개미가 모여드는 병, 大食증으로 불리기도 했고, 상초, 중초, 하초의 소갈병이라고도 했고… 기타 여러 가지 병명으로 불려졌다. 그러나, 요사이는 당뇨를 `혈당이 일정 수준 이상 높은 병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예전에는 혈당을 요사이처럼 數値로서 측정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혈당을 사용하여 당뇨병을 정의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옛날에 우리가 말하던 당뇨병과 지금 우리가 정의하는 당뇨병사이에는 많은 乖離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당뇨병의 정의를 사용하면 소변에 당이 출현하지 않고 있더라도 당뇨로 진단 받는 사람들이 많다. 이 사람들은 예전 같으면 당뇨로 진단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예전 같으면 당뇨로 진단 받을 사람들도 요사이는 당뇨로 진단 받지 않을 경우도 가능하다. 예전에 오진을 했던 것이 아니라, 당뇨병의 개념이 바뀐 것이다.

 

고혈압이라는 질병의 정의도 이와 비슷한 경로를 겪었고, 고콜레스테롤, 갑상선 항진증 등도 비슷한 경로를 겪었다. 특히 이런 병들은, 현대 과학이 발달되면서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지만, 지금에서야 무엇인가 간편하게 측정을 할 수 있는 기술을 인류가 가지게 되었고, 그 측정기술을 중심으로 병이 재정의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아마, 앞으로도 새로 개발되는 측정기술을 중심으로 지금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새로운 병명이 많이 출현할 것이다.

 

위에서 보듯이, 병의 정의란 것은, 많은 경우, 우리가 五感으로 인식되는 증세 가운데에 비슷한 것들이 묶어서  하나의 병으로 정의되고 있다가 原因이 자세하게 알려 지면서 또는 어떠한 진단 측정 기술이 발달되면서 분화되어 가면서, 다시 재정의 되는 과정을 겪는 것 같다. 반면, 몇 몇 증세가 다른 병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하나의 病因으로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거나, 어떠한 측정지수가 그 증세군의 共通分母라는 것을 알게되면 그 증세들의 독립적인 病名이 없어지고 특정병의 합병증으로 불려지게 된 것도 많다. 특히, 당뇨, 고혈압 등이 그렇다. 예전에는 발에 탄저병증세가 나타나는 것과 눈이 멀게 것을 전혀 다른 병으로 취급해왔으나, 혈당이 높다는 것이 그런 환자들 사이의 상당히 빈번하게 관찰되는 공통분모임이 밝혀지면서 그 증세들을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재정의 (regrouping)하게 되었다. 정의라는 것은 분석과 조작을 위하여 정보분석과 개념조작의 ‘기본 단위’를 정하는 행위이다. 분석과 조작의 기본 패러다임이 시대 별로 급격히 바뀔 적에, 정의자체가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처럼 병의 정의가 바뀌어 왔다는 것을 여러 예를 들어가면서 새삼 강조하는 것은, 병의 정의가 바뀌어 온 과정을 살펴보면, 그 병에 관한 과학적 지식의 축적 과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풍사’ 또는 ‘감기’ 라고 불리던 증세가, 단순 감기와 인플레인자로 나누이듯이 말이다. 간염이 A, B, C형으로 나뉘어 가는 것도 그 예의 하나일 것이다.  병의 定義 자체가 아주 機能的으로 정의되고 명확한 病原을 중심으로 정의되면 우리가 그 병의 원인과 그 원인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도 상당히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치료방법에 관해서도 상당한 지식의 축적이 있거나, 치료법을 발견할 가능성도 높은 상태일 것이다. 위에서 이미 예를 들었지만, 학질이라고 불리던 증세가 말라리아라고 불리게 된 과정을 보면 그 과정 가운데 말라리아균이 소위 학질 증세의 상당 부분을 일으키고 있었다는 (보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혁신적인 정보가 축적된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病因을 중심으로 기능적으로 정의된 질병들은 해결책 또한 확실하고, 그의 예방이나 치료법들이 기능적으로 어느 정도 신빙성과 현실적 효용가치가 높은 경우가 많다. 환언하면, 우리가 그 병에 관해서 무언가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 정반대의 경우가 있다. 병의 정의 자체가 애매하게 정의된 경우도 많다. 그 경우는 당연히 그 병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아주 빈약하다고 보아도 된다. 그 병에 대한 예방과 치료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당연히 기능적 효용에 관해 현실적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아도 된다. 어떠한 지수(index)를 중심으로 정의되고 있는 경우, 특히, 우리 신체의 복잡한 신진대사의 어느 한 斷面의 지수를 중심으로 정의된 경우는, 우리가 그 병에 관해서 지식의 축적이 아주 빈약하다고 보아도 거의 틀림이 없다.  아니, 차라리 모르는 편이 오히려 더 안전할 정도로 틀린 지식들이 횡행하게 되어있다고 보면된다. 당연히, 대부분 그런 병에 대하여서는 “—병에는 약이 없어요”라는 상식과 “—병의 특효약은 —”이라는 두 가지 양립할 수 없는 서로 상반된 의견이 같이 통용되기 마련이다. 서로를 사기꾼으로 몰고가는 경우도 흔히 발생한다.  “너나 나나 잘 모르는 문제이니,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나도 일부만 알고, 너도 일부만 아는 것이 당연하다” 이러면 될 일을 가지고, 서로 사기꾼이라고 욕을 한다. 물론, 제한된 시장에서 경쟁자를 제거하겠다는 동기에서 비롯된 일이 되어 놓아서  서로 상식선에서 고치기는 어렵다. 하여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생명현상 그 자체와 아주 밀접한 신진대사와 관련된 특정지수를 중심으로 정의되고 있는 질병들은 아직, 그 원인과 치료방법에 관하여 우리의 지식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병의 정의 자체가 우리의 分析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정의 自體가 분석을 거부하고 있는 대상은 우리가 분석도구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대학입시를 위해 공부를 하는 受驗生에게 `너 무슨 공부를  하니?’를 물어 보았을 적에, `저는 영어는 합격권인데, 수학이 좀 모자랍니다. 그래서 미적분을 좀 보강을 하면 저는 합격할 것 같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경우와 `그저 뭔가 열심히 하여 좀 더 행복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경우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들이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와 목표가 기능적으로 정확하게 정의되어있는 경우에 해결의 실마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의 경우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일은 요원한 것이다.  대학입시의 예를 계속 사용해 보자. ‘그저 무언가 노력하여서, 대강 행복해지고 싶어요’ 식으로 이야기하면 그 애매함이 비교적 솔직하게 들어난다.  그러나, 그런 애매함을 교묘하게 감추는 방법도 많다. 노력이라는 행위와 행복이라는 심리 상태를  그럴듯하게 지수화하여서, “저는 노력을 9 피콜로이상 투입하여, 행복을 37 크라이 이상 달성하는 것이 저의 일차적이 교육목표입니다”라고 말하면 뭔가 전문가 같기도 하고, 뭔가 우리에게 크게 도움을 주는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글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중의 하나가 우리 주위의 많은 분들이 몇 몇 병으로 인하여 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그 고통의 원인중의 하나가, 병의 정의에 상당히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2. 병의 개념상의 혼란에서 오는 硏究방법론의 함정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조금 더 根本的인 문제를 생각해보자. 우리의 신체는 거의 無限복잡성을 띄고 있는 무한 複雜系라고 보아야한다.  무한 복잡계라는 것은 최근 20 년 동안에 유행하기 위한 수학의 한 장르인데, 무한 복잡계라고 하면, 構成因子도 무한히 많고, `분석하면 분석할수록 더 분석할 것이 많아지게 되고’, 그렇게 무한히 많은 구성인자 사이에는 또, 무한히 많은 관계가 존재하고… 거의 모든 부분이 다른 모든 부분과 어느 정도는 연결이 되어있고… 그런 것을 무한 복잡계 (Infinitely Complex System)라고 말한다.  氣象시스템이나, 우리 신체라는 것은 무한 복잡계의 대표적인 예이다.  신체라는 무한 복잡계 시스템이 외부로부터, 또, 음식물이라는 또, 하나의 무한 복잡계의 물질을 받아들이고  무한히 복잡한 과정인 신진대사를 거쳐서 생명 현상을 유지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그 무한 복잡한 시스템의 필수적인 어느 특정 신진대사와 관련된 지수의 변화는 그 시스템 전체의 모든 부분과 무한히 복잡하고도 깊은 상호 의존적인 관련이 있다.

 

이러한 종류의 복잡계 시스템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몇 개의 단순한 인과관계라는 것으로서는 시스템 전체를 파악할 수가 없고,  수 만가지 (아니 무한히 많은 수)의 인자가 서로가 서로를 決定하는 관계, 그렇게 결정된 인자가 또 다시 서로가 서로를 결정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프로세스가 상시(常時)적이고 항상(恒常)적으로 전개된다. 복잡한 시스템의 신진대사의 한 단면(斷面)에 있어서의 지수의 움직임은, 예를 들어 혈당이나 혈압 체온 등은, 그 원인 변수(Determinants)의 숫자와 종류도 무한대이고 그로부터 Determined 되어가는 인자(결과 변수)의 숫자도 무한대로 많은 것이다.  당연히, 당뇨와 같은 지수형 질병들은 합병증도 무한대로 많은 종류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원인의 수도 무한대인 병인 것이다. 일기예보의 예를 들어보면, 히말라야 산 기슭의 나비 한 마리가, 3 개월 이후의 남태평양의 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 그러한 경우가 예가 될 수 있다. 남태평양의 폭풍을 결정하는 인자는 그렇게 무한히 많다는 것이다. 유사한 이유로, 어느 시점의 혈당치를 결정하는 인자의 수도 무한히 많다는 것이다. 무한 복잡계의 지수들은 모두 그러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무한히 복잡한 시스템인 생명현상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가운데, 어느 특정 時點의 혈당이라는, 간단한 지수로 병을 정의하면, 당연히, 그의 원인도 무한하고, 그로부터 결과되는 결과의 수도 무한하다는 것이다.  바로 그 것이, 이러한 지수형 질병의 특징인 것이다. 현재, 성인형 당뇨병은 定義 그 자체가 뚜렷한 원인 규명을 源泉的으로 불가능하게 하고 있고, 당연히, 뚜렷한 치료 자체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과학의 발달과 연구의 진전으로 해결될 수 없는 `정의’ 상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꼭 당뇨병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고혈압도 그렇다. 병의 定義 뿐 아니라, 무한 복잡계의 指數는 모두 그런 특징이 있는 것이다. 어느 특정 시점의 어느 지역의 기온이나 풍향을 장기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이다. `분석하면 할수록 더욱 분석해야 될 대상이 많아지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이렇게 지수로 정의된 병들의 또 하나 특징은, 거의 모두가 일단 발병을 하면 어느 단계까지는 점점 악화(惡化) 되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현상을 유지한다’는 말은 `신체라는 무한 복잡 시스템은 자기 조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 동일한 말이기도 한데, 위에서처럼 지수를 중심으로 병을 정의할 경우, 벌써, 그 지수에 관한 限 자동조절기능이 中長期적으로 瓦解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무한히 많은 인자들 사이에 서로가 서로를 조절해내는 자기 조절기능이 시스템 전체로서 喪失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고, 그 조절기능에 고장이 생겼을 적에 자기가 치유하는 능력도 상실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수형 성인병은 일단 걸리게 되면 반드시 서서히 악화된다는 것은 어떠한 과학적인 관찰과 발견의 결과 얻을 수 있는 지식이 아니다. 생명현상이라는 단어의 정의와 지수형 병의 정의에서 나오는 순환논리 (Tautology)일 뿐이다. 당뇨병은 혈당이 높은 병이라는 것은 과학적 관찰의 결과 얻은 지식이 아니다. 그렇게 정의한 것일 뿐이다. 모든 지수형 질병은 점점 악화된다는 것도 그런 부류의 지식에 들어간다. 왜냐하면, 지수형 질병이라는 말 자체가 `그 지수가 점점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몸의 기능이 망가진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점점 악화되어’ 갈 수 밖에 없다. 당뇨병도 치료와 섭생을 열심히 하지 않으면 10년에 100mg/dl 정도 惡化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여간, 요인도 무한대 거기에서 발생하는 결과도 무한대인 어떠한 事實群을 分析的인 因果關係로서 규명코자 하는 것은 그러한 노력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실패는 정해져 있다. 이러한 문제의 理解와 解決에는 시스템적인 統合적인 방법론을 사용하여야지, 解剖的인 分析의 양(量)을 늘림으로 해결을 찾을 수가 없다. 많은 병에는 해부적인 분석이 더욱 유용하다. 그러나, 성인형 당뇨와 같은 지수형 질병은 전혀 그런 경우가 아니다.  병의 정의 자체가 분석(分析)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얽히고 설킨 원인과 결과가 너무 많은 것이다. 그리고 분석하고 분석하면 할수록, 더욱 분석할 것이 많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몸에서 고열이 나서 지속되는 증세  모두를 단순히 `熱病’이라고 불리던 時節이 있었지만, 요사이는 몸에서 고열이 나는 것에 수많은 원인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에는 그러한 병명자체를 사용하고 있지 않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금의 당뇨병. 고혈압. 고(高)콜레스테롤 등의 병의 정의는 바로 이러한 부류의 병에 들어간다.  엄격한 의미에서 이 세 질병은 機能的으로 정의되어있지 않다.  단지,  관찰이 편리한 어떤 지수를 읽은 것이고, 보통 사람의 지수들보다 그 지수들이 높다는 것이다.  혈당, 혈압, 콜레스테롤지수 등은 우리 신체의 생명현상가운데 어떠한 특별한 斷面의 지수를 말한다.  당연히 그 결정인자 (determinant)도 무한히 많고 그로부터 결정되어지는 증세 (determined)도 무한히 많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신체는 무수히 많은 Feedback이 포함되어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정의된 병에 관해서 현재 흔히들 쓰고 있는 단순한 통계적인 연구를 하면, 반드시 Identification Error in Simultaneous Equation Systems 라고 하기도하고, Dependent Explanatory Variable 이라고 하기도하는 독특한 오류에 걸리게 되어있어서, 그에 관한 독특한 통계처리기교를 별도로 사용하지 않는 한, 샘플의 크기를 아무리 크게 한들 결론이 빗나가게 되어있다. 즉, A와 B가 서로가 서로를 결정하는 관계인데 마치 A는 B에 의해서 결정되고, B는 A 와는 무관한 외생변수 (Exogenous Variable) 라고 통계모델을 짜면 통계모델의 디자인 자체에 결정적인 오류가 있기 때문에 샘플사이즈를 늘려보아도 결론이 반드시 틀리게 되어있다.  많은 경우 심지어는 결론이 거꾸로 나게 되어있다.  당뇨에 관한 수 만 편의 연구논문을 필자가 모두 섭렵한 것도 아니고, 필자가 잘 못된 논문만을 골라서 읽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排除)할 수는 없지만,  필자가 읽은 수 십 편의 성인형 당뇨 관련 논문 중에 위의 오류를 범하지 않고 있는 논문은 한 편도 없었다.  통계를 약간만 공부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결정적인 중대한 결함(缺陷)이 있는 논문들인 것이다.  그로부터의 결론도 당연히 거꾸로 나와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을 생각해보면, 사실, 심히 우려가 된다.

 

즉, 이처럼 지수를 중심으로 정의된 병에 관해서는 분석이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로 어려운 면이 있다. 어떠한 분석도 깔끔한 통계적인 실증을 쉽게 할 수 없는 근본적이고도 원천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지수형 질병의 연구, 특히 통계자료를 축적해야되고, 축적된 통계자료를 중심으로 推論(inference) 를 해야하는 임상연구는 그래서 源泉的으로 어려운 것이다.

 

간단한 예를 하나 더 들어보자,  A라는 물질을 5개월 사용했더니 혈당이 5%떨어졌다는 발견을 어떤 臨床硏究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따라서 A를 당뇨에 효과가 있다고 간단하게들 발표를 한다.  거기다가 약간 더 과학성(?)을 보여 주려면, 소위 Randomized Controlled Double Blind Test를 한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를 사용한 임상연구는 사실 A가 당뇨에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전혀 검증해주지를 못한다.  이를 제대로 검증하려면, A라는 Determinant이외에는 다른 모든 Determinant를 常數(constant)로 잡아야한다. 아니면, 다른 모든 Determinant에 A가 어떠한 효과가 있는지를 알아야한다. 그런데, 그것이 당뇨의 경우에는 불가능한 것이다. A라는 물질을 사용하면서 식욕이 떨어져서 식사량을 줄였는지, 아니면 피로감이 줄어들어서 운동량을 늘렸는지, 잠을 많이 자게 했는지, 아니면 A라는 물질의 가격이 너무 비싸서 그 물질을 사용하려면 소득이 줄고 그 결과 식사량이 줄었는지, 따라서 먹지를 못했고 먹은 것이 없으니 혈당이 떨어졌는지, 아니면, A를 購入할 수 있는 장소가 오직 높은 산 한가운데 있어서 그것을 사기 위해서는 꼭 登山을 하여야하고, 그 약을 살려면 매일 등산을 해야되고, 그 결과 혈당이 줄었는지… 심지어는 `A라는 것은 사실은 혈당을 올리는 성분이 있는데, 몸에서 이를 방어하느라고 혈당을 낮추는 기능을 총동원하게 되고, 그래서 일시적으로는 혈당을 떨어뜨리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그런 기능이 전부 망가져 버리는지… 이 모든 것을 따지고 나서야 A가 당뇨에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다.   거기다가, 인체를 대상(對象)으로한 연구는, 샘플이 무한대라고 하더라도 샘플마다 모집단자체가 다 各其이기 때문에 샘플을 늘리면 틀릴수록 통계적인 推論의 신빙성은 오히려 더 떨어지게 되어있다.  환언하면, 당뇨병과 같은 질병을 놓고, 임상실험을 할 경우, 당뇨병이라는 병의 정의상의 문제 때문에, 샘플을 확대하면 확대할수록, 각 샘플마다 Idiosyncratic Individuality가 더욱 드러나게 되어서, 통계추론의 힘이 점점 떨어지게 되어있다. (Type I Error와 Type II Error가 동시에 增加한다고 통계학에서는 이야기한다) 무한 복잡계의 특징이 바로 그러한 것이다.

 

또, 당뇨관련연구에서는 많은 경우, 소위 Randomized Controlled Double Blind Test (RCT)라는 것도, 그 기본 용도(用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남용되고 있다.  RCT라는 것은 원래 이슬람지역의 의료기술자들이 사용하던 방법이었는데, 2차 대전이후, 제약회사들이 많이 사용하여서 마치 의학상의 발견은 모두 RCT를 거쳐야 그 과학성을 認定받을 수 있는 것으로 일반 사람들은 오해하고, 의료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RCT라는 것은 `어떠한 하나의 Active Ingredient의 존재가 확인되고, 그 Active Ingredient의 효과를 측정할 경우, 그 Active Ingredient 만의 효과를 측정하기 위한’ 기교이다. (통계용어를 사용해서 설명하자면, 그 Active Ingredient가 다른 모든 설명변수와 Orthogonality가 있는 경우에 타당한 통계방법인 것이다) 당연히, `어떠한 하나의 Active Ingredient가 존재하지 않거나, Active Ingredient만의 효과가 아니라, 그 Active Ingredient가 초래하는 직접 간접의 효과를 모두 따져 보아야하는 경우에는 쓸 수 있는 통계기법이 아닌 것이다. 그런 경우에 RCT를 억지로 사용하면, 결론이 거꾸로 나는 경우도 많은 경우이다. 위에서도 예를 들었지만, A는 사실, 혈당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는데, 이를 방어하는 몸 기능이 동원되어서, 결과적으로는 단기적으로는 혈당이 떨어지는 경우, A가 당뇨에 좋다는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물질들은 현재 당뇨연구에서 사용되고 있는 방법론을 사용하면, 당연히 효과가 있다고 결론이 나오게 되어있다.

 

현재, RCT를 통하여서, Placebo효과와의 相對比較를 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한 상대비교를 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Placebo를 구성해야되는데, 완벽한 Placebo를 구성하는 것이, 일단은 Active Ingredient의 규명가능성을 想定하고 하는 이야기이다. 비슷하게 생긴 알약 속에 밀가루를 집어 넣은 것을 주는 환자군과 진짜 약을 준 환자군을 비교하는 것은 소위 진짜 약이라는 것이 모든 면에서 밀가루와 완전하게 동일하고 딱 한가지의 화학성분만 다른 경우에 RCT를 쓰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RCT라는 것은 사실 아주 문제성이 많은 연구방법이다. 특히, 생약성분을 가진 제품에 관해서, RCT를 논하는 것은 RCT의 원래의 용도를 완전 무시한 것이다. 생약성분을 가진 제품에 대하여 Placebo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에 관해서 필자는 아직 그 해답을 갖지 못하고 있다.  생약성분의 Active Ingredient를 알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위에서 이야기한 Orthogonality가 전혀 없는 상황하에서, RCT를 논하는 것은 정말 어불성설(語不成說)을 넘어서서 어거지에 해당한다. 거기다가, 필자가 지금까지 읽은 많은 당뇨관련 임상실험논문에서 RCT는 사실 ‘Placebo’효과를 측정하는 것에 주안을 둔 것이지, 진짜 약의 효과에 주안(主眼)을 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Null Hypothesis와 Alternative Hypothesis가 거꾸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을 내릴 때는 다시, 진짜 약에 대하여 결론을 내린다. `방법론’은 Placebo가 얼마나 효과가 있나를 연구하는 방법론을 썼으면서, `결론’은 진짜 약에 대하여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다. `이미 치료가치가 확립된 진짜 약에 비교할 만한 Placebo를 만들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는 연구와 `Placebo보다 더 좋은 진짜 약인가 아닌가’를 보는 연구는 언 듯 듣기에는 전혀 같은 말 같으나, 통계디자인은 반대의 경우의 디자인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결론이 반대로 나올 경우도 상당히 많다.

 

현재까지 필자가 읽은 당뇨관련 논문의 대부분이 바로 이 오류를 범하고 있다.   당연히 필자와 같은 사람들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필자가 처음으로 지적한다거나, 필자 혼자서 느끼는 문제가 아니라, 통계를 어느 정도 공부해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견해이다. 예를 들어, J.W Williamson, P.G. Goldshmidt, and T. Colton 같은 분들도, 의학연구전반에 통계방법론이 오용되고 그에 따라 추론에 오류가 발생하고 있는 점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Quality of Medical Literature: An analysis of Validation Assessments,” medical Uses of Statistics, J.C. Bialer and F. Mosteller (eds.) Wlatham, MA: NJEM Books 1986), 자유도가 부족한 문제도 J.A. Freiman et al., “The importance of Beta, the Type II error, and Sample Size in the Design and Interpretation of Randomized Controlled Trial: A Surbery of 71 ‘Negative’ trials,”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1978에서도 필자의 이러한 우려는 공감되고 있다.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통계학의 배경을 가진 良識있는 權威있는 학자들의 良心的인 경고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같은 의학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잡지가 실어준다는 것이 희망을 주는 이야기이지만, 사실, 그 이후 의학연구의 통계적인 방법론에 한 치의 向上도 없었다는 것은 필자를 크게 失望시키고 있다. 다행이 요사이 유전자지도의 작성을 통하여서 이론적으로 확실한 근거를 가진 통계적 Design의 중요성이 의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알려지고 있기는 하다. 참고로, 당뇨관련 연구의 통계처리의 예로서 필자가 쓴 Working Paper인 “Statistical Summary of Eleotin’s Effect” (www. eastwoodcos. com/science) 를 일독(一讀)해주기 바란다. 필자의 방법론은 아마추어적이고, 투박하기 짝이 없는 방법론일 지는 몰라도, 적어도 위에서 필자가 지적한 통계상의 근본적인 오류는 피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마, 특히 Double Blind Test를 하지 않고 대신 컨트롤 그룹을 사용하여 역으로 Placebo에 관한 추론을 한 것으로는 필자의 연구가 처음이 아닌가 싶다.

 

3. 병의 개념상의 혼란으로 인한 치료방법의 함정.

 

자, 병을 이렇게 정의해서는 전혀 지식의 진보자체가 이루어 질 수 가 없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갈 것이다.  사실, 이것은 연구비를 더 투입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연구비가 모자라서 연구가 진전이 더딘 것이 아니라 병의 정의가 잘 못되어있기 때문인 것이다.

 

연구하는 분들의 연구방법론 상의 문제는 그렇다 치고, 실제로 臨床에 임하는 臨床  와 환자 사이의 문제는 이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어떠한 병이든지 치료라는 것을 `원인을 제거하거나 개선하여 신체가 정상으로 움직이게 함’으로 정의한다면, 치료라는 말을 이런 식으로 정의하는 한, 그 병 자체가 원인이 있다면 알아낼 수 있는 성질의 병이어야 한다.  병의 정의 자체가 너무 광범위하게 또는 曖昧하게 잡혀있어서 소위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닐 경우, 아니면,  생명현상 그 자체와 너무나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서, 실제로 생명현상과 분리하여서는 관찰자체가 어려울 경우는 `원인을 없앰으로써 신체가 다시 정상적으로 움직이게 함’이란 의미에서 치료라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즉, 원인자체를 그 수와 종류가 무한할 수 밖에 없도록 병을 정의하는 한, 위에서처럼 정의한 치료라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그것은 과학의 踏步나 進步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문제의 정의자체에 해답이 없도록 문제를 정의하였을 경우, 연구를 한다고 해도 그 문제에 답이 있을 수 없고 해결을 한다고 노력을 해도 해결책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노력과 투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당뇨병이나 고혈압 등 지수를 중심으로 정의되어있는 병들이 바로 그런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당뇨병이라는 병의 정의자체가 사실은 애매하다.  단지, 혈당이 높은 것을 당뇨병이라고 하는데, 열이 높은 것을 열병이라고 하였던 수세기전의 의술에 비해, 질병의 정의의 기능적 效用에 관한 限 한 치의 進展도 없는 것이다. 단지 혈당의 측정이라는 비교적 손쉬운 기술이 하나 더 있다는 것 뿐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 사람에게 고열이 발생하는 경우는 수만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고열을 열병이라고 독립적인 질병으로 취급하였지만,  요사이는 고열이라는 것은 훨씬 더 분화된 다른 병들의 증세의 하나로써. 하나의 참고사항일 뿐이지, 그것 자체가 독립적으로 정의된 하나의 질병으로 여겨져서 고열병의 원인을 찾겠다고 나서지도 않고, 고열병 협회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뇨에는 아직, 겨우, 소아형 당뇨와 성인형 당뇨정도의 구별을 하고 있다.  그래도 소아형 당뇨는 비교적 기능적으로 잘 정의되고 있다. 과학적 지식의 축적도 성인형 당뇨 쪽 보다는 그 쪽이 훨씬 차곡 차곡 이루어져나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성인형 당뇨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플라즈마 인슐린과 C peptide test정도의 테스트를 함으로써, 수 십 억 명의 당뇨를 몇 가지로 간단하게 분류하여 놓고 있다. 이에 비하면, 차라리 우리 나라의 사상의학 쪽이 훨씬 더 정교한 分類를 하고 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고혈압 쪽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여기에서 무언가 확실한 돌파구를 찾으려면, 정의 자체가 훨씬 더 분화되어야한다.  어쩌면, 병의 정의와 치료사이에 혈당이라는 것은 하나의 관찰지수이지 그것 자체로서 질병을 정의하고 거기에서 치료를 찾기 시작하는 노력은 노력을 해보기도 전에 이미 실패가 정해져있는 원천적으로 허망한 노력일 가능성이 있다.

 

몇 가지 비유를 들어보자,

 

아직도 그런 것이 있는 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한국에 살 적에는 시청 앞에는 소위 騷音공해지수라는 숫자를 나타내는 전광판이 덕수궁 쪽으로 붙어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 공해지수라는 것은 시청 근처의 그 時刻의 소음이 얼마나 시끄러운가하는 것을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기억한다. 그런 것을 측정하는 이유는 서울 전체가 얼마나 시끄러운가하는 문제에 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시청 앞의 그 지수가 아주 높다고 하더라도, 그 지수가 높은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 지수를 높게 하는 底邊 요인이 더 문제일 것이다. 서울 전체에  자동차가 많이 다니고, 공사 같은 것을 너무 많이 하여서, 그 소음공해가 시민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는가 아닌가가 바로 그 저변의 문제일 것이다. 서울 전체가 소음공해로 떠나가던 말던, 자동차들은 무조건 시청 쪽으로 오지 못하도록 하고, 측정기계가 없는 주택가 쪽으로 돌려버리면, 시청 앞의 소음공해지수는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거나, 심지어는 그 소음공해측정기를 이불 같은 것으로 덮어버리면 된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런 것을 우리는 황당한 생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소위 의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한다는 사람들의 당뇨병에 대한 접근 방법이 이런 식으로 아주 황당한 접근방법일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혈당을 떨어뜨리는 것에 관하여, 아주 유사한 황당한 일들을 저지르고 있다. 안 그래도 지칠 대로 지쳐있는 췌장을 더욱 쥐어짜서,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인슐린 생산능력을 아주 근본적으로 말살시키는 약, 아니면, 전분을 먹어서 혈당이 오르니, 전분을 먹어도 소화가 안되게 만드는 약… 이런 종류의 약을 투여하는 행위가 바로 그런 행위이다. 물론, Insulin Secretion이라고 전문용어를 들이 대고, AlphaGlucosidase Inhibition이라고 전문용어를 들이 댄다.  거기다가 그런 식으로 투여하는 약들은 7년 정도계속 사용하고 나면 신장기능이 아주 망가지게 되어있는 것이 상식인 그런 猛毒성이 있는 약들인데도 말이다.  主從이 顚倒되고, 목적과 指數가 顚倒가 된 것이다. 서울 시청 앞의 소음공해지수를 낮추겠다고 자동차 교통의 흐름을 전부 주택가로 돌려버리면 사람들은 그런 정책에 반발할 것이다. 그 바보스러움도 쉽게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나, 당뇨병에 관한 황당한 접근은 Insulin Secretion이라고 전문용어, AlphaGlucosidase Inhibition과 같은 전문 용어 속에 숨어있어서 환자들이 반발하기가 아주 어렵다. 사실, 교통의 흐름을 주택가로 전부 돌려버리는 황당한 정책도 TRS(Traffic Rerouting System: 교통재류체제) 이런 식으로 정의하면 아마 그 황당성을 상당기간 은폐할 수 있을 것이다.  의학연구에 이렇게 방법과 목적간에 주객전도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황당한 일들이 전문용어 속에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이를 우려하는 의료연구의 지도자들의 목소리를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바드대학의 교수인 T. Kaptchuk의 명저인 “The Web That has No Weaver”라는 책 (Contemporary Books, Lincolnwood, Illinois, 2000)의 381쪽에는 필자가 위와 같은 입장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학자들의 결론이 일목요연하게 소개되고 있다.

 

당뇨는 혈당이 높은 병이다. 그러나, 당뇨치료는 혈당강하에만 포인트를 두면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있다. 서울의 소음 공해 문제를 해결하는데,  시청 앞 소음공해지수측정기계에만 관심을 두면, 시민건강의 문제는 절대로 해결을 못하는 이치와 똑 같은 것이다. 당뇨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몸 전체의 컨디션과 몸 전체의 자율조정능력에 초점을 두어야한다. 그렇게 하여서 급기야는 혈당까지 떨어지도록 해야되는 것이다. 혈당만 떨어지게 하여서는 반드시 무리가 생기게 되어있다. 서울 전체에서 소음이 발생치 않도록 하여서, 그 결과, 시청 앞의 기계에 나타난 지수에도 그러한 서울전체의 변화가 반영되도록 하여야한다.

 

여기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고 지나가자. 필자가 2-3년 전에 서울에서 책방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 자연히 당뇨관련 책들로 필자의 관심이 기울어졌고, 여러 책을 뒤적뒤적 거리면서 필자는 失笑를 禁치 못하였다. 거의 예외 없이, 모든 책이 서두에는 `당뇨에는 치료방법이 없으니 절대로 속지 마시오’로 시작하고 있는데, 20 페이지정도 뒤에는 당뇨의 치료법이라는 챕터를 자신의 책 속에 시작하고 있었다. 치료법이 없다고 했으면서 자신의 책에는 어떻게 치료법을 소개하고 있는가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어떻게 그런 정도의 명확하고 엄청난 오류가 아무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이 수 십 년을 계속되어 오는 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뇨에 관한 개념의 혼란으로 인해 소위 당뇨전문가들도 이런 식의 어처구니없는 愚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은 전부 엉터리 치료고 내 치료법만 유일하게 진실(眞實)된 치료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주장할 일이지, 무엇 하러, `당뇨에는 치료법이 없으므로 누가 있다고 하더라도 속지 마시오’라고 크게 떠들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여간, 그 분들의 논리라면, `당뇨에는 치료법이 없으니 속지 마시오, 단 나에게만 속으시요’라고 소리이다. 그 분들도 모두 고등교육을 받으시고, 학문적으로나, 인격적으로 존경(尊敬)할 만한 분들인 것도 필자는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이런 멍청한 내용을 책에 쓰게 된 것도 사실은, 병의 정의 자체를 애매하게 해 놓으니,  `管理’와 `治療’도 명확하게 구별할 수가 없어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인 것 같다.  관리(管理)에 치중(置重)을 하여 생각하면 치료라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치료라는 것에 치중을 하여 생각해보면 관리라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경우인 것 같다. `당뇨병에는 치료법이 없어요’라는 말을 할 적에 당뇨전문의들은 마치 무슨 거룩한 양심선언이라도 하는 양 의기양양(意氣揚揚)해 하는 것을 보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웃기지도 않는 일이다. 당뇨라는 병을 그렇게 애매하게 정의한 이상, 치료법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지, 무슨 대발견이 아니다.  병을 그런 식으로 애매하게 정의하였기 때문에 `없을 수 밖에 없는 치료법’을 `없다’고 하는 것이 무슨 양심선언이 되는지 필자는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발언은 양심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발언인 것이다. 양심보다는 지능지수(IQ)와 오히려 관련이 깊은 발언이다.

 

필자가 잘 알고 있는 세계 당뇨계의 지도급 연구자께서 하신 말씀이 아마 가장 합리적인 입장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꿩잡는 것이 매입니다”  의사가 무어라고 하던, 당뇨병의 정의가 무엇이던, 인슐린 세크리션이 어떻던… 살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낫게 해주고, 눈이 머는 것을 낫게 해주면 그런 방법이 왕이지요… 바로 그렇다. 내분비학계에서 어떻게 평가받는가는 내분비학계내부의 일이지, 그 곳에 속하지도 않고, 그 곳에 속한 분들의 권위를 사용하고 싶어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구속력이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문제의 핵심에 정면공격(正面攻擊)을 해보는 것이 왜 의학계(醫學界)에서는 이렇게도 어렵다는 말일까? 당뇨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A라는 제품이 있다고 하자, 그것이 문방구이건, 화장품이건… 실질적인 도움을 얼마나 주는가 얼마나 안전한가로 판단하려 하지 않고, `한국에서는 무엇으로 분류되었습니까?’ `rebate는 어떻게 됩니까?’ 로 모든 사고방식이 경직되어서야 어떻게 환자들의 생명을 다룰 수 있다는 말인가? 실제로 당뇨환자들에게 무엇이 도움이 되는가? 이것이 바로 핵심이 아니겠는가?

 

4. 학계(學界)와 市場의 구조적(構造的)인 문제들

 

몸 전체가 망가지는 것이 뻔한 약인데도, 식약청에서 허가를 맡은 약이라는 이유 하나로,  영미의 유명한  제약회사에서 발명하였다는 이유 하나로, 맹독성이 있는 약을 환자에게 먹인다. 아에 신장이나 간장이 박살이 날 때까지 먹인다.  신장투석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신장장애가 얼마나 괴로운 병인지 잘 알면서도 말이다.   참 큰 일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생명을 맡기지 않으면 안 되는 우리들의 현실이 서글픈 일이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구조적 요인’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먹이사슬’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더욱 是正하기가 어려워진다. 만약 시청 앞의 소음공해측정기를 定期점검하는 것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市廳을 지배하고 있으면, 정말로 소리가 나지 않는 완전 무소음 자동차를 발명해서 가져다 주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자동차가 서울에서는 운행을 못하도록 만들 것이다. 마찬가지의 일이 당뇨 연구계와 당뇨치료제시장에서는 매일 벌어지고 있다.

 

경제학의 예를 들어보자, 코스닥 지수 자체는 수많은 경제단위에서 개별 경제행위가 일어난 결과 집계된 관찰지수인 것이다. 경기가 나빠져서, 코스닥 지수가 어느 날 아주 낮아 졌다고 생각을 해보자. 이럴 경우 제대로 된 정부는 코스닥지수 그 자체보다 오히려 선진산업에 얼마나 많은 기업이 참여하는가, 그 기업들이 얼마나 많은 수익성을 내고 어떠한 파급효과를 가지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또 어떠한 산업정책을 밀어붙이면 어떤 종류의 기업이 더 활발하게 되고… 식으로 정책집행이 소위 기능적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지수(指數) 그 자체는 관찰대상, 참고사항일 뿐이지 경제의 주체들이 이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를 해야되는 그런 것은 아닌 것이다. 즉, 경제단위가 활동을 하고 난 후의 결과가 심리적으로 반영된 결과적 증상현상이지, 경제실체를 좌지우지하는 기능적 동인이 아닌 것이다.  코스닥지수가 내려갔다고, 코스닥지수를 올리라는 지시를 대통령께서 국무회의에서 지시하셨다고 하자,  그런 지시를 실행하는 방법 중에는 아주 간단한 방법들이 있다. 정부가 돈을 풀어서 지수가 오를 때까지 코스닥에 상장되어있는 증권을 사들이면 되는 것이다. 아니 심지어는 코스닥지수의 계산 방법을 바꾸어버리는 방법도 있고, 증권을 싸게 사고 팔면 잡아넣는다라고 발표하고 어기는 사람을 잡아넣으면 된다. 거래량이 없어지건 말건 다른 부작용이 발생하건 말건 그것은 관계없다. 그것은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진(先進)산업에 많은 기업이 진출하건 말건… 그것은 관계없다. 대통령의 지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인위적으로 증권시장을 조작하면 기업들은 중장기적으로 더욱 골탕먹는다는 것이 경제학을 공부할 필요도 없이 일반사람도 상식만 가지고도 알 수 있다. 약간 더 인위적이고 약간 더 우스꽝스러운 예를 들어보자. 코스닥 지수가 내려갔다고 해서, 국가정보원의 직원들을 몰래 증권거래소에 파견하여 코스닥지수가 나오는 기계의 전광판자체를 바꾸어 놓는다고 하자, 얼마나 우스운 발상이겠는가?  증권지수를 올리기 위하여 위와 같은 정책을 썼다가는 당장 우스개 거리가 된다.  코스닥지수에 관한 한 그것은 우스개 소리이다. 그러나, 현재, 당뇨 등 지수를 중심으로 정의된 성인병의 치료에는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당뇨는 혈당이 높은 병이다. 따라서 혈당을 낮추는 약을 먹으면 된다.”라는 명제는 “코스닥지수가 너무 낮으면 국가정보원의 직원을 파견해서라도 전광판을 조절하여 밤새 올려놓으면 된다”라는 소리와 전혀 같은 차원의 이야기인  것이다.  “학질은 말라리아균이 발생시킨다. 말라리아균을 죽여야된다” 처럼, 어느 기능적 원인을 중심으로 기능적 처방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정의된 어느 인위적인 개념을 중심으로 지극히 인위적인 조작을 시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 것이다. 학질처럼 원인(原因)을 중심으로 기능적으로 정의된 병에는 그런 식으로 원인을 없애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치료들이 통하는 것이다. 코스닥지수나 혈당치 같은 指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런 식으로 指數 자체를 움직여서는 곤란하다. 지수나 지표(指標)의 이상(異狀)은 시스템의 이상(異狀)을 감지하는 신호등이고 경고등이지, 그 지수와 지표 자체를 조작한다고 시스템의 이상(異狀)이 개선(改善)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정책이나 방법을 써서 코스닥지수나 혈당치에서의 개선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코스닥지수와 혈당치 그 자체를 조절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원인을 없애는 것이 치료이지, 결과를 억누르는 것이 치료가 아닌 것이다. 당연히, 모든 지수형 질병의 치료(컨트롤)에 쓰이는 약들은, 원인을 제거하려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억누르려 할 경우, 당연히, 부작용이 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수형 병의 정의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Tautological 한 결론인 것이다. 병의 정의가 잘 못된 것에서 시작한 문제들이다.

 

아래에서는 위에서처럼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실제로 발생하는 상황을 약간 자세히 살펴보고, 개선책(改善策)이 가능한지도 살펴보자.